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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범근 축구상은 박지성에게 단순한 ‘칭찬’의 의미 이상이었다. 박지성은 훗날 “가장 잊을 수 없는 상이다. 스타(차범근)를 만난다는 생각에 너무 떨렸다”며 당시의 소감을 회고한 적 있다.

17/02/2011  Reported By Sportal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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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성 특집 : 그는 어떻게 탄생했나?

한국 축구의 아이콘 박지성(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 국가대표팀에서 은퇴했다. 존재 자체가 곧 한국 축구의 역사인 그를 추억하며, 박지성이 만들어낸 전설의 발자취를 되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박지성은 1981년 2월 25일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부모의 태몽은 ‘용꿈’이었다지만 정작 산고 끝에 태어난 건 작고 허약한 사내 아이였다. 자라면서 다섯 번이나 경기를 일으켜 부모를 놀라게 했을 정도로 몸이 약했던 소년은 늘 부모의 근심거리였다. 결국 부모는 ‘하나만이라도 잘 키우자’고 뜻을 모은 뒤 아이를 더 갖기보다는 이미 낳은 외아들에게 온갖 정성을 쏟기로 다짐한다.

박지성의 어린 시절은 그랬다. ‘두 개의 심장을 가진 사내’, ‘산소 탱크’ 같은 현재의 별명은 덩치도 작고 예민했던 꼬마 ‘지성이’와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게다가 수줍음도 많이 타던 그는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엄마의 치마폭을 한 시도 떠나지 않으려는 연약한 아이였다. 이처럼 모두가 마냥 조용하고 숫기 없는 아이로만 알던 박지성이었지만 유독 공을 찰 때만큼은 달랐다. 작은 덩치에 조용한 성격은 여전했지만 공만 잡으면 눈빛이 달라졌다. 남들이 볼 때만 그런 것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다른 일에는 자신이 없던 어린 지성은 공을 잡고 다른 아이들의 틈을 요리조리 빠져나가 슛을 날릴 때만큼은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단다. 공부든 그림이든 노래든, 어떤 일에 딱히 특별한 소질이 있다고 생각해 본 적 없었던 박지성이었지만 축구만큼은 달랐다. 즐겁게 공을 찰수록 박지성은 또래들의 부러움을 사기 시작했다. 축구는 박지성이 친구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는 유일한 자랑거리였다. 그래서였을까. 조용하던 박지성은 축구를 할 때만큼은 목청이 높았고 때로는 얼굴도 붉혔다.

축구는 하면 할수록 빠져드는 놀이였다. 점점 축구가 좋아지는 걸 느꼈고, 좋아하면 할수록 실력도 늘었다. 그러다보니 이제 골목에서 공 차는 것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박지성은 본격적으로 축구를 배우고 싶어졌다. 어린 나이였지만 장래 희망도 이미 정해져버렸다. ‘축구선수’가 되려는 꿈이 가슴 속에 여물어 가고 있었다. 그러던 박지성이 부모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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