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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컵 결승전 - 1909년 4월 24일

브리스톨 시티 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
A 턴불 22

사진: 맨유의 빌리 메레디스. 그의 스포츠샵이 결승전 유니폼을 공급했다.

23/04/2009  Report by Steve Morg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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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년 4월 24일

간단한 질문 하나를 던져보자. 1909년 4월 24일 최초로 FA컵을 품에 안았던 맨유와,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휘하에서 처음으로 FA컵 우승을 차지했던 팀 사이에는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까?

날쌔고 나이를 먹지 않는 웨일스 출신의 윙 마법사는 답이 아니다. 빌리 메레디스는 1909년 브리스톨 시티를 격파했던 팀의 핵심 멤버이긴 했지만, 맨유가 1990년 크리스탈 팰리스를 무너트렸을 때는 라이언 긱스가 데뷔하기 8달 전이었다. 1909년 대회 결승전이 열렸던 경기장이 같은 이름을 갖고 있긴 했지만, '팰리스'도 답은 아니다.

포기했다고? 답은 바로 맨유가 컵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그 두 시즌, 리그에서는 모두 13위의 저조한 성적에 머물렀다는 것이다. 컵대회에서 만났던 적수에게는 안타까운 일이다.

어니스트 맹놀의 팀은 리그 챔피언으로 1908/09시즌을 시작했다. 그리고 1908년 동안 우사인 볼트만큼이나 빠르게 내달렸다. 맨유는 1907/08시즌, 승점 52점의 대기록(당시에는 승리에 승점 2점이 주어졌다)으로 2위 애스턴 빌라에 승점 9점이 앞선 채 우승을 차지했다. 득점 기록 역시 대단했다. 맨유는 샌디 턴불(25골)과 조지 월(19골)의 활약에 힘입어 총 81골을 터트리며 리그 최다 득점을 차지했다.

리그 5연승으로 1908/09시즌을 시작하며 또 다시 우승 가능성이 흘러나왔지만, 이후에는 선덜랜드전(1-6)과 미들즈브러전(0-5)의 패배 같은 악몽이 이어졌다. 리그에서 부진이 이어지면서, FA컵을 새로운 목표로 삼은 것도 놀랄 일은 아니다.

맨유는 사우던 리그의 브링턴과의 홈 경기(1-0)로 FA컵을 시작했고, 또 다시 홈에서 에버턴과 경기(1-0)를 치렀다. 그리고 블랙번 로버스와의 일전에서는 스코츠 샌디와 지미 턴불(앞서 언급한 샌디 턴불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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