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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저 바인은 최초로 "버스비의 아이들"이라는 별명을 얻은 두 선수 중 한명 이었다. 또 한명은 재키 블랜치 플라워였다. 이 둘은 1951/52시즌에 나란히 데뷔했다. 
10/12/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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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비의 아이들의 탄생

도전의 측면에서 1945년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감독직을 맡는 것은 맨발로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는 것과 같아보였다.

1930년대에 클럽은 두번이나 1부 리그에서 강등당했고 거의 파산 지경이었다. 게다가 세계 2차대전 중이던 1941년에 루프트바페(나치 독일의 공군)이 올드 트래포드를 폭격했고 이로 인해 유나이티드는 지역 라이벌 맨체스터 시티의 홈구장인 메인 로드에서 홈 경기를 치뤄야만 했다.

하지만 그런 문제들은 1945년 2월 19일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은 맷 버스비 감독에게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버스비에게는 빛나는 비전이 있었다. 그는 폭격으로 파괴된 경기장에서 아름다움을 보았으며 그런 불씨에서 불사조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회를 보았다.

스코틀랜드의 라나르크셔의 석탄 채광지인 벨실 출신의 버스비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의 가치를 알고 있었으며 정직한 노력이 이뤄낼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맨체스터 시티가 1934년 FA 컵 우승을 거둘 때 시티의 선수였기 때문에 맨체스터와 맨체스터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유나이티드와 보여주었던 파트너십은 영국 축구계에 돌이킬 수 없을만큼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다.

버스비를 맨유의 감독으로 영입하는데 도움을 준 것은 기업가 루이스 로카였다. 올드 트래포드의 감독직을 맡아달라는 로카의 편지는 버스비에게 전달되는데 한달이나 걸렸다. 리버풀은 전쟁 이후 버스비가 플레잉 코치로 돌아오길 바랬다. 하지만 버스비는 미래를 설계하길 바랬고 그가 해냈던 것을 스스로 이뤄 내고 싶었다. 그는 어린 선수들과 가벼운 발놀림을 가지고 있는 선수, 그리고 그의 상상속에 있는 이상적인 선수, 그의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선수를 데려옴으로써 미래를 그려나기기를 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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