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스 회장은 레인저스(스코틀랜드)의 이브록스(Ibrox) 스타디움을 건설했던 라이치를 설계 총 책임자로 임명한다. 잉글랜드의 산업이 발전하며 맨체스터 시민들의 레저 시간이 증가하고, 인구 또한 200만명에 육박해지면서, 데이비스는 이들에게 엔터테인먼트를 제공할 마치 '극장'이나 '콘서트 홀'과 같은 개념의 스타디움을 만들고 싶었다. 맨체스터 양조회사로부터 6만 파운드에 부지를 구입한 라이치는 브람멜트와 스미스, 맨체스터 출신의 두 건축가들과 함께 이 계획을 실현시켜 간다.
이들의 창의적인 계획의 개념은 무척 간단했다. "잉글랜드 북부 최고의 구장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비록 10만석 규모의 구장을 지으려했던 라이치의 계획은 추가적인 재원 3만 파운드가 들어감에 따라 축소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실망스러운 규모는 아니었다. 마침내 1910년 2월 19일 이 웅장한 스타디움은 그 첫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비록 오프닝 경기에서 라이벌 리버풀에게 3-4로 패배하긴 했지만, 올드 트라포드는 "관람하기 환상적인 경기장"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
이전의 시기 또한 매우 적절했다. 1909년 2월 22일, 뱅크 스트리트에서의 마지막 경기에서 토트넘을 5-0으로 완파하며 새 구장에 대한 헌사를 한 맨유 선수들은 곧 올드 트라포드로 이사했고, 그로 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뱅크 스트리트는 주변의 주택들과 함께 붕괴하는 사고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마치 '보울(Bowl)'을 닮은 듯한 올드 트라포드는 굽어진 테라스(입석 관중석)으로 둘러 쌓여 있었다. 총 수용 관중수는 82,000명으로 12,000명은 지붕이 딸린 곳에서, 나머지는 오픈형 테라스에서 관전할 수